111문 111답


제 1 문 ~ 제 10 문

1. 독도(獨島)는 어떠한 위치와 크기를 가진 섬인가?

2. 독도와 그 영해는 어떠한 자원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3. 한·일간의 '독도영유권 논쟁'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4. 한국정부는 이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5. 그후 '독도영유권 논쟁'은 어떻게 되었는가?

6. 한국측은 일본측의 이러한 행동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7. 그 후 일본측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가?

8. 일본측 문헌자료조사에서 독도가 일본영토였다는 증거자료들이 나왔는가?

9. 그러면 왜 최근에 '독도영유권 논쟁'이 격화되었는가?

10. 일본정부는 '유엔 신해양법'과 관련하여 '독도'에 대해 어떠한 정책을 실행했는가?


제 11 문 ~ 제 20 문

11.한국정부는 일본정부의 이러한 공격적 외교를 보고만 있었는가? 한국측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12.일본은 한국 영토인 독도를 일본 EEZ의 기점으로 취했는데, 한국이 그 1년 2개월 후에 자기의 영토인 독도를 한국 EEZ의 기점으로 취하지 않고 울릉도를 한국 EEZ의 기점으로 취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렇게 되면 한국의 독도 영유권에 훼손이 오는 것이 아닌가?

13.유엔 신해양법 121조 3항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그에 의하면 '독도'는 참으로 EEZ의 기점이 될 수 없는 섬인가?

14.한국과 일본의 교수 이외에 세계 다른 나라 전문학자가 '독도'와 같은 섬이 EEZ의 기점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한 학자가 있는가?

15.챠니교수의 유엔 신해양법 121조 3항의 해석의 요점은 어떠한가?

16.독도를 현재의 상태로도 챠니 교수의 해석에 의하면 한국 EEZ의 기점으로 택할 수 있다는 것인가? '개발'하면 한국 EEZ의 기점으로 택할 수 있다는 것인가?

17.외무부의 일부 관련자는 '독도기점'을 포기하고 '울릉도기점'을 선택해도 울릉도와 일본 오끼도의 중간 선을 한·일 EEZ 구획선으로 잡으면 '독도'가 한국 EEZ 속에 포함되는 것이니 독도영유권에는 훼손이 없다고 설명했는데, 과연 그러한가?

18.외무부의 어떤 자문교수는 말하기를, 한국이 '독도기점'을 양보하고 '울릉도기점'을 택하면 일본의 '독도기점'은 유엔에서 인정받지 못하게 될 것이고, 또한 일본이 태평양 쪽의 '암석'을 일본 EEZ 기선으로 잡은 것도 무효화되어, 한국의 원양어업이 넓어져서 한국이 '독도기점'을 취한 것보다 '울릉도기점'을 취한 것이 총이익이 더 많다고 설명했는데, 이것은 어떠한가?

19.동해에서의 'EEZ획정'을 위해서는 어느 나락 합의해야 하는가?

20.그러면 한국이 '독도기점'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일본이 이미 일본 EEZ의 '독도기점'을 공표하고 있고, 한국은 그후 '울릉도기점'을 공표해 버렸는데 이제와서 '독도기점'을 공표해도 일본이 합의해 주겠는가?


제 21 문 ~ 제 30 문

21.1999년 1월 22일 체결된 신한·일어업협정에서는 '독도'는 어떻게 취급되었는가?

22.독도가 '중간수역'에 포함된 것은 한국의 독도영유권을 조금이라도 훼손한 것인가?

23.일본정부는 과연 '독도'를 침탈할 의사가 있는 것인가? 우리가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일 일본이 '독도' 침탈의 의지가 있다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24.일본정부는 독도가 역사적으로 오랜 옛날부터 한국의 고유영토임을 모르고 있는 것인가? '독도'는 언제부터 한국영토로 되었는가?

25.혹시 '우산국'은 '울릉도'만을 영토로 한 나라이고 '독도'는 우산국의 영토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우산국의 영토가 '울릉도' 뿐만 아니라 '독도'도 모두 우산국영토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고문헌이 있는가?

26.{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27.날씨가 청명하면 울릉도에서 '독도'가 과연 보이는가?

28.그 다음 고문헌 자료에는 어떠한 것이 있으며 그 특징은 무엇인가?

29.독도가 우산국의 영토로서 이미 서기 512년 이래 한국영토임을 증명하는 그 밖의 고문헌 자료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30.숙종시대에 안용복(安龍福)이라는 뱃군이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는데 큰 일을 해냈다고 들었는데, 그 때의 기록에는 '독도'가 조선영토라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가?


제 31 문 ~ 제 40 문

31.그 밖에 '독도'가 옛 우산국 영토이며 한국 고유영토임을 증명하는 고문헌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32.고문헌 이외에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옛 우산국(于山國)의 영토임을 증명하는 자료는 없는가?

33.그렇다면, 일본측에서 일본 고문헌에 '독도'가 최초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이며, 그 내용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34.이밖에 일본에는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기록한 고문헌은 없는가?

35.일본정부는 최근에 '역사적'으로도 '독도'는 일본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1600년 전후부터 약 80여년간 일본이 면허장을 민간인에게 주어 '독도'(竹島)를 실효적으로 지배 점유했었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일본측의 주장은 근거가 있는 것인가?

36.그러면 당시 오오다니와 무라가와 두 일본인이나 '도해면허'에 관련된 자들은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도서(섬)임을 인지하고 있었는가?

37.일본측이 조선정부 몰래 일본어민 2가구에게 울릉도와 독도에 국경을 넘어 건너가서 고기잡이를 해도 좋다고 허가하는 면허장을 내어주고, 일본어민들이 울릉도·독도 근해에 출현해도 조선정부와 조선어민들은 그대로 방관만 했었는가? 조선측과 일본측의 충돌 같은 것은 없었는가?

38.그렇다면 이 때 대마도 도주는 도쿠가와 막부와의 관계에 있어서 어떠한 위치에 있었으며, 대마도 도주의 요구에 조선의 조정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39.당시 조선 조정은 그렇게 나약하고 국토수호 의지도 없었으며, 그렇게 부패해 버렸었는가? 온건대응파의 결정을 비판하는 세력도 없었다는 말인가?

40.일본의 조선에 대한 공식적 외교창구인 대마도 도주는 조선정부의 위와 같은 당당한 외교답서에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가? 그들은 조선의 외교답서를 접수하여 다시 이전과 같은 국경 존중의 태도를 보였는가?


제 41 문 ~ 제 50 문

41.그렇다면, 1693∼1695년간의 '울릉도=죽도' 영유권을 둘러싼 조선과 일본 사이의 외교논쟁은 어떻게 해결되었는가?

42.그러면 대마도 번주는 1696년 1월 도쿠가와 막부 관백의 위의 결정과 명령을 즉각 수행하여 조선측에 통보했는가?

43.안용복(安龍福)은 1696년 1월과 12월 사이에 또 어떠한 활동을 했다는 것인가?

44.안용복(安龍福)이 제2차로 일본을 다녀 온 후 조선정부와 일본정부 사이에 정식 외교교섭과 논쟁 종결의 문서 교환이 있었는가?

45.1696년 1월의 도쿠가와 막부 장군의 결정이 혹시 울릉도만 조선영토로 재확인한 것인가, 아니면 독도를 포함하여 울릉도와 독도를 모두 조선영토로 재확인한 것인가?

46.그렇다면 1696년 1월 이전의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일본측의 영유권 시비는 도쿠가와 막부 장군의 조선영토 재확인 결정으로 모두 소멸되고 조선과 일본 사이의 영토논쟁은 모두 종결되었나? 도쿠가와 막부에서 미자(米子)의 일본 어부 2가문에게 허가한 '죽도도해면허'(竹島渡海免許)와 '송도도해면허'(松島渡海免許)는 모두 취소된 것인가?

47.그렇다면 오늘날 일본정부가 '독도'를 [역사적으로 일본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닌가?

48.안용복(安龍福)은 두 차례나 일본에 건너가서 울릉도와 독도(우산도)를 지키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조정에서는 포상이나 제대로 했는가?

49.17세기말 일본과의 울릉도·독도 영유권 논쟁이 잘 해결된 후 울릉도 [공도정책(空島政策)]은 폐기되었는가? 울릉도 [공도정책]은 언제 왜 시작되었으며, 17세기 말 [울릉도·독도 영유권 논쟁] 이후에도 계속되었다면 왜 그렇게 되었는가? 조선왕조 대신들의 울릉도 정책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50.일본 측은 1696년 1월 도쿠가와 막부 장군이 울릉도·독도를 조선영토로 재확인하고 일본 어부들의 월경 고기잡이를 금지한 이후, 이 금령을 잘 준수하고, 울릉도·독도에 대한 조선의 영유권을 잘 존중했는가?


제 51 문 ~ 제 60 문

51.근대에 들어오면서 메이지정부(明治政府)는 울릉도와 독도를 계속 조선영토로 간주했는가? 메이지 정부는 처음부터 '정한론(征韓論)'을 채택했는데, 그들도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영토로 인정했는가?

52.일본 메이지 정부의 다른 부처에서도 독도와 울릉도를 조선영토로 인지했었는가? 일본영토 관리의 책임부서인 일본 내무성도 독도와 울릉도를 조선영토라고 인지했는가?

53.그렇다면, 당시 일본 최고국가기관인 태정관(太政官, 총리대신부)은 울릉도와 독도를 어느 나라의 영토라고 판정하고 확인했는가?

54.그렇다면 당시 일본 군부(軍部)는 울릉도·독도의 영유권을 어떻게 보았는가? 특히 바다에서 활동하는 일본 해군은 '독도'를 어느나라 영토로 간주했는가?

55.오늘날 일본정부는 {수로지}는 초국가적으로 '수로'를 설명하는 것이므로 국가별 영토의 의미는 없다고 반박한다는데, 이것은 사실인가? {수로지}도 영토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가?

56.일본 해군은 왜 이 때 '독도(우산도)'를 '松島'라고 표시하지 않고 '리앙쿠르드岩'이라고 표시했는가? 왜 일본에서는 처음에는 '울릉도'를 '竹島'라고 불렀다가, 독도를 '리앙쿠르드岩'이라고 표시할 때부터는 '울릉도'를 '松島'라고 부르게 되었는가? '竹島'라는 일본 호칭은 사라진 것인가?

57.조선 정부는 일본이 군함을 파견하여 울릉도를 실측 조사하고 '죽도'니, '송도'니 '리앙쿠르드岩'이니 하고 자의로 이름을 바꾸어 붙이며 해안과 영토를 넘보고 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잠만 자고 있었는가?

58.울릉도검찰사 이규원이 울릉도에 들어가 현지조사를 실행한 결과는 어떠했는가? 일본인들이 실제로 울릉도에 몰래 침입하여 벌목을 하고 있었는가?

59.그러면 조선의 중앙정부에서는 국왕과 대신들이 이 때 어떻게 대응했는가? 울릉도 [공도정책]과 [수토정책]을 폐기하고 [재개척정책]을 채택하여 시행했는가?

60.울릉도 '재개척사업'은 정책 채택 직후 바로 실시되었는가? 언제 어떻게 울릉도 [재개척사업]이 본격적으로 실행되었는가?


제 61 문 ~ 제 70 문

61.동남제도개척사 겸 포경사 김옥균은 울릉도·독도 재개척에 성공했는가?

62.갑신정변 후에는 울릉도·독도 재개척사업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것은 추진 주체가 없어서 중단되었는가?

63.일본인들은 울릉도에서 모두 철수한 후 다시 들어오려는 기도는 없었는가? 일본측의 울릉도·독도에 대한 이 무렵의 정책은 어떠했는가?

64.조선정부는 이에 대해 어떠한 조치를 취했는가? 울릉도의 목재를 일본측에서 탐내었다면 큰 경제적 가치를 가졌기 때문이었을 터인데, 조선정부는 왜 이를 벌채하여 외국에 수출하는 정책을 수립하지 않았는가?

65.자기나라의 삼림자원의 벌채권을 남의 나라에 '이권'으로 주어 국익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다니, 어찌하다 나라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울릉도의 삼림벌채를 놓고 정부는 러시아에게 '벌채권'을 넘겨주고, 일본인들은 불법 침입해서 울릉도 삼림을 벌채해가면, 3국 사이에 국제분쟁은 발생하지 않았는가?

66.재부임한 울릉도 도감 裵季周와 부산항 외국인 세무사의 울릉도 실태 보고는 어떠했는가?

67.대한제국 정부는 일본인들의 불법입도와 삼림벌채 및 불법행태와 이를 금지시킬 것을 강력하게 요구해 오는 러시아측의 압력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68.우용정의 조사단 일행이 실제로 조사한 1900년 당시의 울릉도의 실태는 어떠했는가? 일본인들이 밀입도하여 마을을 이루고 살면서 삼림을 벌채해가고 있었는가?

69.우용정의 조사단 일행의 보고서에 대해 일본측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일본측은 보고서의 내용에 승복하여 일본인들을 철수시켰는가?

70.대한제국 정부는 일본측의 이러한 무성의와 방자한 반응에 어떻게 대응 조치를 했는가? 일본측에 대한 항의를 강화함과 동시에 밀입도한 일본인을 대한 제국의 권력으로 추방하고, 울릉도에 대한 수호책과 행정관리를 강화시켰어야 할 것 아닌가?


제 71 문 ~ 제 80 문

71.왜 '울도군'을 설치할 때 구 통치구역인 '독도'의 명칭을 이전처럼 '于山島'라고 하지 않고 '石島'라고 표시했는가?

72.그러면 이 무렵에 우산도를 발음을 취하여 '獨島'라고 표기한 기록도 발견되는가?

73.그렇다면 대한제국의 1900년 칙령 제41호의 공포는 '근대'에 들어와서 한국정부가 '독도'에 대해 통치권을 행사하고 제도화한 매우 중요한 사건이 아닌가?

74.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일 뿐 아니라 근대에 들어와서도 1900년에 대한제국이 근대국제공법 체계 속에서 칙령 제41호로서 또 울도군에 속한 한국영토임을 제확인하여 {관보}에도 공표했는데, 왜 일본은 독도를 침탈하여 일본에 소위 '영토편입'하려 했는가? 일본의 독도 침탈 시도, '영토편입' 시도에는 특수한 목적이 있었는가?

75.나카이(中井養三郞)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목적으로 '독도'에서의 어업독점권을 갖고자 했는가?

76.그렇다면 나카이는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알고 있었다는 것인가?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나카이가 인지하고 있었다는 문헌상의 증거자료가 있는가?

77.그러면 나카이가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지하고 독도에서의 어업독점권을 신청하려던 계획을 일본정부는 어떻게 바꾸었는가? 일본정부가 나카이의 계획을 바꾸어 독도를 인본영토에 소위 '편입'하려 했다는 증거자료는 있는가?

78.일본정부는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한국영토인 독도를 일본에 '영토편입'한다는 결정을 내렸는가? 이때 '한국영토 독도'를 어떤 구실을 만들어 지우려고 했는가?

79.일본정부는 독도를 일본에 '영토편입'한다는 결정을 해놓고 한국정부에 이를 사전 또는 사후에 조회 또는 통보했는가? 일본정부는 어떠한 방법으로 '독도'의 일본에의 '영토편입' 결정을 한 사실을 세상에 알렸는가?

80.왜 일본정부는 '독도'를 일본에 '영토편입'한 사실을 한국정부와 세계 각국에게 '사실상의 비밀사항'으로 해두려고 구차한 고시방법을 택했었는가?


제 81 문 ~ 제 90 문

81.'독도'를 일본에서 '竹島(다케시마)'라고 호칭한 것은 1905년 1∼2월의 이 때부터인가?

82.일본정부는 그후 독도에 러·일전쟁 도중 일본 해군 '망루'를 설치했었는가?

83.일제가 해군성 주도로 한국영토인 독도를 일본에 소위 '영토편입'한다는 내각회의 결정을 하여 침탈을 시도하고, 독도에 일본 해군 '망루'를 철거하는 등의 작업을 한 사실을 당시 대한제국 정부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가?

84.그러면 대한제국 정부는 일본이 '독도'를 침탈하려고 일본에 소위 '영토편입'한 사실을 언제 알게 되었는가? 일본정부는 언제 이 사실을 대한제국 정부에 통보해 주었는가?

85.일본측은 왜 '독도'를 일본에 '영토편입'한 사실을 구태어 1906년 3월 말을 택하여 대한제국 지방관이 알도록 누출시켰는가? 그 일자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86.울도군수 沈興澤은 1906년 3월 28일 울도군청을 방문한 일본 시마네현 隱岐島司 일행으로부터 '독도'를 일본에 '영토편입'했다는 정보를 듣자 어떻게 대응했는가?

87.강원도관찰사는 울도군수 심흥택의 보고를 받고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가?

88.대한제국 중앙정부의 내부대신은 강원도관찰사 서리의 위의 보고를 받고 어떻게 반응했는가?

89.대한제국 중앙정부의 참정대신은 강원도관찰사 서리의 위의 보고를 받고 어떻게 반응했는가?

90.당시 여론은 어떠했는가? 당시의 신문들은 일본의 '독도' 침탈, '영토편입'을 어떻게 보도하고 어떻게 평론했는가?


제 91 문 ~ 제 100 문

91.당시 대한제국 국민들과 지식인들은 이 보도를 읽고 어떻게 반응했는가? 특히 지식인들은 이에 반응하여 일본의 독도 침탈 시도를 비판한 문헌을 남겼는가?

92.그러면 1906년 이후와 일제강점하에서 '독도''는 어떠한 상태에 있었는가?

93.일제 강점기에 독도는 완전히 일본 시마네현의 부속 도서로 분류되었는가?

94.연합국은 제2차 세계대전 도중에 만일 일본이 패전하면 일본이 침탈한 영토들을 원주인에게 반환시키고 일본은 원래의 일본으로 돌아가도록 조치할 정책을 갖고 있었는가?

95.그러면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의한 제2차 세계대전 종결 후 일본이 약취했던 한반도와 '독도'는 연합국에 의해 어떻게 한국에 반환되었는가?

96.일본정부는 그후 SCAPIN 제677호는 연합국 최고사령부의 최종결정이 아니므로 이 때 '독도'(죽도)를 한국에 최종 반환했고 일본으로부터 최종 분리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항의했다는데, 과연 그러한가?

97.연합국최고사령부는 그후 SCAPIN 제677호를 수정하여 한국영토로 반환한 '독도'를 일본영토로 반환한다는 식의 다른 특정한 SCAPIN을 발표했는가?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독도'에 관련하여 혹시라도 다른 번호의 특정 SCAPIN을 발효한 것은 없는가?

98.대한민국의 독도영유를 더욱 보강하는 또 하나의 SCAPIN은 어떤 것인가? 그것의 SCAPIN 제677호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99.이 무렵에 미군이 '독도'를 미 공군의 연습장으로 사용했다가 울릉도 어부를 다수 폭사시킨 일이 있었고, 일본측은 미 공군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간주했기 때문에 미공군 연습장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는데, 그러한 사실이 있었는가?

100.최근에 [연합국의 구일본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가 발견되어 1951년 연합국의 대(對)일본 강화조약을 준비할 때 구일본영토 처리 문제에서 연합국은 '독도'를 한국에 귀속시키기로 합의했었다는데, 사실인가? 이 문서의 내용과 의미는 어떠한 것인가?


제 101 문 ~ 제 111 문

101.일본 정부는 1951년 9월 8일 미국을 비롯한 48개 연합국과 일본이 서명한 [對일본 강화조약]의 제 2조에서,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거문도·울릉도를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규정했는데, 이 포기 부문에 '독도'가 포함되어 표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는데, 이 문제는 어떠한가? 일본 정부의 주장은 성립될 수 있는 것인가?

102.연합국 측은 1946년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SCAPIN 제 677호로서 '독도'를 한국영토로 판정했는데, 왜 1951년의 [對일본 강화조약]에서는 '독도'를 누락시켰는가?

103.어떻게 해서 연합국 측의 [對일본 강화조약]의 제 5차 초안까지는 '獨島'의 이름이 있다가 제 6차 초안부터는 '독도'의 명칭이 빠지게 된 것인가? 배후의 원인이 있었던가?

104.연합국의 [對일본 강화조약] 제 6∼9차 초안에서 '독도'를 일본영토에 포함하여 일본영토로 표시하려는 일본측의 활동과 이에 동조한 미국인들의 활동은 어떻게 저지되었는가? 당시 대한민국 외무부는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적극 활동했는가?

105.일본정부는 산프란시스코에서의 1951년 연합국의 [對일본 강화조약]에서 일본이 한국에 반환한 영토는 1910년 8월 소위 '합병조약' 때 점령한 영토이고 그 이전인 1905년에 영토편입한 곳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는데, 이 문제는 어떠한가?

106.일본정부는 '독도'가 국제법상으로도 '한국영토'로 재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52년 1월 28일 '독도'(죽도)는 일본영토라고 주장하면서 '영유권논쟁'을 걸어왔다. 한국정부가 일본의 주장을 일축하자, 일본정부는 1954년 9월 '독도문제'를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였다는데, 사실인가?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면 일본은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인가?

107.1965년 한·일 기본조약과 한·일 어업협정이 체결되었을 때 한국의 '독도' 영유권은 손상받지 않았는가? 이 때 '평화선'이 철폐되었는데, 이 문제는 어떠한가?

108.그러면 일본정부가 다시 독도문제에 대해 공격적 외교와 침탈준비를 본격적으로 다시 전개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이 [유엔 신 해양법]을 채택 적용한 1996년부터인가? 이 때 왜 일본은 독도침탈에 대해 강한 의지를 표시하고 공격적 외교정책과 해양정책을 전개했는가? 1998년의 한·일어업협정 일방적 폐기와 1999년의 신 한·일어업협정 체결에서 '독도문제'는 어떻게 취급되었는가?

109.신 한·일 어업협정에서 협정 체결 한국측 관계자들은 신 한·일 어업협정은 고기잡이에만 관련된 것이지 영토나 EEZ에는 무관한 협정이기 때문에 독도영유권과는 어떠한 관계도 없다고 주장하는데, 사실인가? 또 관계자들은 신 한·일 어업협정은 제 15조에서 기존의 한국독도영유권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조항을 명문으로 기록하여 넣었다는데, 사실인가? 관련자들은 또 유엔 해양법 제 121조 3항에서 무인도는 EEZ이 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는데 '독도'는 무인도이므로 한국 EEZ 기점으로 잡지 않았다고 했는데, 일본은 어떻게 1년이나 앞서 '독도'를 일본 EEZ의 기점으로 잡았는가? 신 한·일 어업협정에서 '독도'가 '중간수역'에 포함된 것은 한국의 독도영유권을 조금이라도 훼손한 것이 되는가? 관련자들은 '중간수역'을 공해적 성격이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일본측도 그렇게 해석하고 있는가?

110.최근 일본정부에서 일본국민의 호적을 독도에 옮겨 등재해 주었고, 또 육·해·공군 자위대가 이오지마(硫黃島)에서 독도 상륙 접수 연습을 했다는 보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일본은 독도에 대해 어떠한 정책을 집행하고 있는 것인가?

111.그러면 대한민국은 자기의 영토인 '독도'를 지키기 위하여 어떠한 대책을 수립하여 집행해야 하는가? 우선 신 한·일어업협정에서 독도영유권의 훼손당한 부분은 어떻게 복원해야 하는가? 앞으로 '독도'를 수호 보전하기 위해여 어떠한 방향의 정책을 입안 실행해야 하는가?